우리 집 조그만 뒤란엔 봄에 싹을 틔워 죽죽 솟다가 어느날 그 잎에 맞게 길게 뻗은 매무새나는 잎 겨드랑이 끝둥에 큰 제비꽃 마냥 보라색 꽃을 달기 시작하는 기특한 꽃이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달개비의 확대된 모습이랄까? 삼각형 모양의 석장 꽃잎이 모두 하나의 꽃이 되었다. 그 꽃이 무엇인지 이름을 모르다가 밴드에 올린 사진을 보고 선배님이 꽃 이름을 자주달개비(Spider-wort, Tradescantia reflexa Rafin.)라고 언급해 와서 알게 되었다. ‘그래~ 봄이면 피는 노란꽃은 봄꽃, 보라색꽃도 봄꽃…’ 이라며 노래 비슷한 가락을 지어 불러본다. 왠지 봄에 땅숨이 풀리면 제일 먼저 올라오는 땅에서 한뼘 크기로 자라는 Shilla도 언제 본 란에 실었던 기억이 난다. 청승스럽고도 한스러운 보라색의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
뒤란에 오월도 다 가는 어느 날 죽순마냥 쑥쑥 잎만 올리던 이 꽃이 드디어 청아한 남도 물빛같이, 우리 누님의 한(恨) 같이 노란 꽃술에 청남색 꽃을 피웠다. 어느새 흰 두루마기 입은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가 어디서 들려오는 듯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활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그 설움의 꽃이 어이하여 내 집 뒤란에 피었을꼬…
달개비는 논가나 들길 따위의 습한 곳에서 파란 하늘색으로 노란 꽃술을 달고 여름한 철 피어나는 꽃이다. 닭의장풀이라고도 하는데 왜 의장이란 어려운 한자어가 붙었는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친근한 사위질빵이니, 며느리 밥풀꽃, 며느리 배꼽, 며느리 밑씻개, 애기똥풀 등 친근한 이름이 많은 우리 꽃!
내 누님 꽃~ 자주달개비꽃
자주 달개비 꽃 피면
시집 간 울 누님
온다고 했지요
설운 자주 꽃
자주 옷고름 달고
온다고 했지요
저 자주꽃 피고 지어도
오지 않는 내 누님! /나무신문
서진석 박사·시인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