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결에 우리 집에 와서 내 꽃이 된 우단담배풀(毛蘂草, Mullein, Verbascum thapsus L.) 꽃! 그 꽃 이름을 꽃 모습을 바라봄으로써 이해해 보고자 한다. 우단이란 비단을 말함인가. 아 그러고 보니 비단처럼 보드랍게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담뱃닢처럼 생긴 풀이라고 할까… 이 꽃 얘기를 하려면 지난 봄, 여름 푸성귀를 먹고자 스티로폼 박스에 흙을 채우고 가꾸어서 잘 먹고, 모두들 흙으로 돌아간 후 박스 한 귀퉁이에 남아 혹독한 겨울에도 죽지 않은 양의 귀처럼 길쭉하고 보드라운 이파리를 화분에 옮겨 심었다. 겨우내 다른 식물 화분과 함께 차고(Garage)를 들락거리며 햇빛 좋은 날엔 꺼내고 밤엔 안으로 넣는 일을 반복했다. 기특하게도 잎귀들은 더러 떨어져 나가고 눈을 맞고 결빙된 그 속에서 살아남았다. 무슨 식물인지도 모른채 꽃을 보고자 하는 일념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Edwards Gardens 가는 길 섶, 그리고 정원의 한 곳에서도 이 식물이 자라던 것을 생각하고 그 꽃 모양도 떠올려 보았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어디서 우리집 뒤란까지 왔을까?
봄에 잎이 깨어나고 대궁이 위로 쑥쑥 커 올랐다. 그러던 어느 늦봄인지 여름날에 그 대궁 위에 남근처럼 솟은 봉오리에 조록조록 연두노랑색으로 꽃을 달았다. 이 모습을 ‘7~9월에 줄기와 가지 끝의 수상(穗狀) 꽃차례에 노란 꽃이 촘촘히 달리는 모습’이라고 Google 렌즈의 카메라 검색을 한 바 일러주고 있다. 야단스럽지 않은 자그만 다섯 갈래 꽃이지만 코를 갖다대면 달콤 상큼한 향내를 안겨준다. 치자꽃 냄새와는 다른 그 비슷한 내음도 가진 듯한… 어쨌거나 꽃 향기란 꽃 모습처럼 사진에 담을 수도 없어 표현이 미숙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묘사해내지를 못함이 애틋할 뿐.
우단(羽緞, Velvet, 비로도)이 들어간 꽃 이름에 우단동자꽃도 있다. 그러나 그 꽃의 이미지는 많이 다르다. 내년에도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뿌리만 살아있다면 내년에도 잎, 이어 꽃을 볼 수도 있을텐데… 아니면 튼실한 씨앗이라도 맺어준다면 내년에 땅에 닻을 내려 꽃을 피울 수도 있을 것이다.
목자의 어린양의 귀를 단 꽃
양(羊)의 귀처럼
총명하게 쫑거리길레
목자(牧者)이시던 예수님이 사랑하던
아흔 아홉 마리 양 무리에서 빠져나온
한 마리 양을 생각했지
그리곤 거두어서
온 겨울 목숨을 살려
노오란 세상꽃을 보게 함이러니
목자의 한 마리 양
허름한 우리 집 와서
복스런 꽃이 되었다네 /나무신문
서진석 박사·시인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