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 한국인의 꽃집 앞에서 낯선 식물의 정부(頂部)가 꽃 같은 식물 하나를 본다. 트레 머리를 한 듯이 이쁜 여인네 모습의 붉은 분홍 색조를 띄었다. 잎 겨드랑이에서 노란 꽃을 피운다는데 꽃은 보여주지 않았다. 아마도 이 이쁜 꽃처럼 생긴 부위는 언젠가 본 관엽식물의 Bromeliad의 정부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니 처음 보는 사람은 그 부위가 꽃인줄 알겠지.
그래서 생각해 본다. 볼품없이 작아도 향기를 안겨주는 꽃이 있는 반면에 꽃-엄밀히 말해서 꽃 같이 생긴 다른 부위-꽃대, 포(苞) 같은 것-은 이쁜데 코를 갖다대고 향기를 맡으려 해도 무덤덤한 꽃이 있다. 놀랍게도 이 식물은 꽃 향기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향기가 없거나 그다지 향기롭지 않으나 보기 좋은 꽃과 꽃은 보잘것없으나 향기를 머금어 선사하는 꽃 중에 그대는 어느 쪽을 원하겠는가?
장미는 화사하게 예쁘기도 하지만 상큼하고 풋풋한 향을 조금 안겨주기에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존재감을 당당히 울려주는 이 식물은 안보면 보고 싶어지는 모습을 지녔다. 그리고 언제 다시 가보니 그 자리에 없다. 팔려 간 걸까? 아니면 다른 꽃으로 대체해 놓은 걸까? 물어보지 않았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는 여인을 닮았으니 향기를 안겨주는 대신 그 몫을 당당히하리라!
Curcuma! 한글명이 심황, 강황(薑黃), 울금으로 나온다. 뿌리가 함유한 커큐민 성분 때문에 한방 약재이기도 하고 노란 염색을 들이는 데 쓰는 식물이라는데 그 소재(素材)가 덩이뿌리에서 나온다고 한다. 화분 흙 속에 숨겨진 뿌리가 보고 싶어진다. 생강과(Zingiberaceae)라고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생강처럼 생겼으리라. 아무튼 자주 대하지 않는 식물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쏠쏠하다고 할 수밖에…
노란 물 들이는 꿈을 꾸며~ Curcuma
네 앞에 다가가면
트레머리를 곱게 올린
여인이 떠오른다
신윤복의 월하정인같이,
초충도를 그린 신사임당같이
곱게 머리를 올렸다
가슴에 무슨 꿈을 안고 살기에
네 지축(地軸)의 발부리가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노?
그 물 들어
나도 노란 손수건 한장
고이 지니고 싶다 /나무신문
글·사진 서진석 박사·시인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