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신문 | (사)한국목재재활용협회 유성진 전문위원] 국내 최초 MDF공장인 동화기업이 1986년 인천에서 가동된 후, 1989년 대성목재와 청담물산이 가동될 때 까지는 국내 MDF업계의 주 원재료인 제재부산물 목설(Slab)은 붙어 있는 수피를 인력으로 박피한 후에 납품하는 물량을 사용할 정도로 원재료가 풍부했지만, 1990년대로 들어오면서, PB공장들의 증설과 신규 MDF공장들이 지속적으로 건설되면서 원재료인 제재부산물의 가격은 1992년에는 미박피 목설이 ₩13000/톤에서 한때는 ₩70000/톤을 상회하다가, 국내 산림이 조림 후 벌기령이 도래해 리기다원목과 활엽수 원목 공급이 증가하면서 목설에 대한 의존율이 낮아져 현재는 MDF업계 원재료의 30%를 충당하는 수준이 되었다.
국내원목(산업용재) 공급 증가는, 목재 제품(목질 판상재,제재목,펄프) 중에 유일하게 MDF(중밀도섬유판) 제품이 국내자급 거의 100%를 달성하고, 일부 수량은 수출까지 하는 원동력이다.
현재 베트남의 MDF산업은 30여년 전에 우리나라처럼 원재료가 풍부하고 가격이 낮으며, 학력 수준은 높지만 낮은 인건비의 노동력이 풍부하고 거기에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결합해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고무나무 밭(벌채산지)에서 제재원목을 제외한 다양한 나뭇가지와 뿌리까지 인력으로 화물차에 상차를 한 차량들이, MDF공장 정문 밖으로 몇 ㎞를 줄을 서서 납품을 대기하고 있었고, 계근을 하고 입고한 차량에는 몇 명씩 공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차 인부들이 수작업으로 원목을 하차하고 있었다. 원목 상차시에 인력으로 적재해야 하고, 차량 구조상 장비로 하차를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워낙 인건비가 싸니 가능할 일이라 생각됐다.
공장에서 생산된 MDF 제품은, 가구공장으로 직송되어 내수와 수출용 가구로 만들어 진다. 고무나무를 심어 일정기간 동안 농작물 경작을 병행하다가, 고무를 수확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오랜 기간 고무수확을 하고, 더 이상 고무수확을 할 수 없는 늙은(?) 나무는 벌채하여 제재목과 MDF원재료로 활용하고 있으니 정말 거의 한톨도 버리지 않은 나무활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