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1세기를 흔히 ‘문화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는 각 나라와 민족, 또는 지역이 저마다의 고유한 문화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풍부한 목재자원과 탁월한 창조력, 우수한 장인정신으로 세계에서 유래가 드문 독창적인 목재문화를 이루어 왔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황룡사 9층 탑을 비롯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과 사찰, 가옥 등 수많은 목재문화재들이 우리의 자긍심을 높여왔다.
목조 문화재에 사용된 기둥부재의 수종을 통해 시대별 목재자원의 변화를 살펴보자.
기둥부재로 사용되는 목재는 건물 전체에 가해지는 엄청난 하중을 지탱해야하기 때문에 직경이 일정한 크기 이상이어야 하고 외부 환경에 직접 노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구성이 큰 수종이어야 한다. 건물의 외관을 결정하는데 기둥부재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색상과 문양 등 미적인 면도 중요한 요소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요구조건을 만족시키는 수종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느티나무는 그 중 몇 안 되는 수종이다.
느티나무는 흔히 목재의 황재라 일컬어질 만큼 그 쓰임새가 다양하고 재질 또한 우수하다. 색상이나 무늬가 중후하고 아름다우며 단단하고 충격에도 강하다. 건조시 덜 틀어지는 특성이 있어 예로부터 건축, 가구, 생활용품 등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고려말기에 건축된 목조문화재 중 느티나무를 기둥부재로 이용한 비율은 55%에 달했으나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감소해 조선후기에는 전체 기둥부재 중 21%에 불과했다.
느티나무와 함께 목조건축에 가장 널리 사용된 수종은 우리나라 대표 수종인 소나무였으며 조선후기로 접어들수록 사용량도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말기까지 소나무가 기둥부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0%에 불과했으나 조선후기에 이르면 전체 목조 건축물의 72% 가량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느티나무 사용이 감소하면서 소나무와 함께 기둥부재로 널리 사용된 수종은 상수리나무다.
건축물의 종류에 따라 기둥부재의 수종구성이 상이했다. 국보급의 경우 여수 진남관을 제외한 나머지 건축물이 모두 사찰건물이기 때문에 이들의 수종구성 비율이 느티나무가 많았다. 보물급의 경우 사찰 건축물이 모두 45개소였으며 이들의 수종구성은 소나무류가 46%로 가장 많았고, 느티나무 35%, 상수리나무 7% 순이었다.
보물급 문화재 중 가옥, 누각, 정자, 관아 등의 용도로 사용된 건축물의 수종구성은 소나무류가 86%로 가장 많았고, 느티나무 7%, 그 외에 물푸레나무 등이 이용된 경우가 있었다. 일부 정자, 누각, 사당, 향교 등에서 활엽수재가 이용되었지만 일반가옥에는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서적 또는 과학적으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침엽수재로 건축된 건축물은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주며 활엽수재인 참나무류나 느티나무로 건축된 건축물은 웅장하고 중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과학적 측면에서는 이들 수종을 이용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목재 조직학적 및 목재 건조학적으로 검토해 보면, 소나무는 송진을 생성하고 송진 이동에 관여하는 수지구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다. 소나무 특유의 은은한 향은 우리민족 정서에 잘 어울리고, 또한 이러한 송진은 강한 내구성을 갖게 한다.
이 같은 이유로 건축물이 크고 웅장한 사찰의 대웅전이나 향교의 대성전 등에는 느티나무, 참나무와 같이 하중을 견디기 충분한 강도적 특성을 갖는 나무가 많이 이용되었다.
반면 작은 규모의 건축물인 가옥 등의 주거공간에는 대부분이 강도가 적은 침엽수재를 이용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그러나 궁궐건축은 웅장함과 중후함을 드러내야하는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침엽수재를 사용했다. 이는 목재의 물리적 특성을 잘 고려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목조 건축물에서 대표적인 대형부재가 ‘기둥’과 ‘보’인데, 현대 과학으로도 ‘기둥’과 ‘보’ 같은 대형부재를 완벽히 건조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옛날에는 대형부재는 대부분 거의 생재상태에서 이용했고, 건축물이 완성되면서 서서히 건조과정을 거치게 되어 참나무류나 느티나무 등 방사조직이 넓은 나무는 내부 할열, 뒤틀림 등의 변형이 발생하게 된다.
내부 할열은 목재가 건조될 때 표면이 먼저 건조되어 수축을 시작하며 이때 표층과 내층의 응력이 발생되어 방사조직을 통하여 내부에서 횡단 방향으로 할열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어린 시절에 큰 기둥이나 보로 건축된 건물에서 잘 때 밤에 ‘두둑’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는데, 이 소리를 귀신소리라고 하여 깜짝 놀란 기억이 있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소리가 내부 할열과 뒤틀림 등의 변형이 발생할 때 나는 소리로 추측된다.
물론 침엽수재에도 내부 할열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세포벽이 얇고 약하며 방사조직이 넓고, 분포 수가 많은 활엽수재의 내부 할열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런 이유로 궁궐에서는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재를 많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이 우리 목조 문화재는 단순히 그 나무가 주위에 많아 쉽게 구할 수 있고 가공하기 쉽기 때문에 이용한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오랜 실용적 경험과 합리적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나무를 선택하고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산림자원 조성은 세계적으로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제 목재가 생산ㆍ이용되는 단계에 와 있다. 근래에 건축된 주택은 대부분 수입외재로 지어졌고 일부 부재, 내장재 등은 활엽수를 이용한 경우도 많이 있다.
건축부재는 재색, 문양, 향기, 기계적 특성, 내구성, 가공성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주택 부재는 우리 땅에서 우리의 물과 공기를 먹고 자란 향이 좋고, 문양이 아름다운 우리 정서에 잘 어울리는 소나무, 잣나무, 낙엽송, 삼나무, 편백나무 등의 침엽수재를 이용하면 한국적이면서 안락한 주거문화를 창출하고 우리 목재의 이용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